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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운하, 낙동강 일대 어떻게 되나]⑤위대한 습지유적 사라지나 -도민일보

등록일: 2008-01-25


[경부운하, 낙동강 일대 어떻게 되나]⑤위대한 습지유적 사라지나 -도민일보 '수억 년' 한반도 역사 소멸 위기 "당선자 문화재 개념, 비석·사찰 수준" 그곳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지난 2004년 6월 창녕군은 부곡면 비봉마을 입구에 양배수장(물을 퍼내는 시설)을 짓고 있었다. 태풍 매미로 바로 옆 청도천 물이 넘치자 더 큰 배수펌프를 만들려는 공사였다. 그런데 공사 현장에서 조개더미와 빗살무늬 토기 같은 게 나왔다. 이에 김해박물관이 그해 11월 30일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을 시작했다. 지난 2005년 8월 이곳에서 발굴된 나무배는 세계적인 발견이었다. 또 도토리 저장시설이나 망태기, 멧돼지가 그려진 토기 등 생활도구 등은 우리나라 고고학 발굴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것이다. 신석기 시대 역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였다. 유물만이 아니다. 유물이 나온 지역은 신석기 전 기간의 조개더미가 온전히 보존돼 있었다. 이를 토대로 학자들은 남해안 신석기시대 토기문화의 순서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또 당시 자연환경을 연구할 수도 있게 됐다. 문화재청은 이런 가치를 인정해 지난해 8월 28일 이 지역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86호로 지정했다. 이곳에는 '창녕비봉리패총'이란 이름이 붙었다. 비봉리패총은 우리나라 '고고학 발굴 습관'을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강 주변 습지에 고대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그래서 습지유적을 찾는 일도 아주 중요해졌다. 그동안 발굴은 주로 구릉지역을 중심으로 했었다. 실제 창녕군이 펌프공사를 하기 전까지 어느 학자도 비봉리에 이처럼 엄청난 유적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유적 발굴에 이골이 난 경남대학교 이상길 교수(역사학)가 이명박 당선자 쪽이 경부운하를 밀어붙이는 것을 보고 걱정하는 게 바로 이런 부분이다. 그는 비봉리패총 같은 습지유적이 낙동강과 그 주변 하천 어느 곳에서도 또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지난 3일 문화재청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한강과 낙동강 주변 500m 안에 국가·시도 지정문화재가 72점이 있다고 보고했다. 또 반경 100m 안에 있는 매장문화재는 177곳이라고 밝혔다. 이를 보는 이 교수는 답답하다. "단순하게 낙동강 주변 100~500m 안에 문화재가 몇 점 있다 정도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또 땅속에 토기가 몇 점 들어 있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낙동강 주변 습지에는 아직 발견도 못 한 유적이 많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습지 자체가 몇 억년을 지나온 한반도의 지형·지질 정보다. 그것은 또 인간이 살아온 조건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다." 실제 대운하와 관련해 지금까지 나온 자료를 보면 이명박 당선자 쪽의 문화재 개념은 비석이나 사찰, 정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운하를 만들면 오히려 지역 문화유산이 더 많이 알려질 것이란 논리는 이런 인식에서 나왔다. 그래서 이 교수는 더 걱정이다. 당선자 쪽에서는 유적 발굴과 관련해 어떤 방법도 내놓은 게 없다. 찬성이나 반대 논리보다 유적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유적이 있는지 없는지와 개수나 크기나 종류 등도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다. 기본 자료도 없다. 어느 지역을 정밀하게 조사해야 하는지, 유적이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기본적인 계획도 없다. 본류보다는 지류 쪽에 유적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면 운하를 만들면 지류를 어떤 식으로 할 건지, 지류 쪽은 조사·발굴을 어떻게 할 건지도 모른다. 도대체 아직 계획도 없는 이 모든 일을 일 년 안에 해내고 운하를 착공한다는 자체가 말도 안 된다." 이 교수는 이렇게 깎고 파고 자르면 일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막무가내 건설업자식의 사고가 무섭다. 진주 대평리 유적이 물속으로 사라진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지난 1995년 진주시 대평면과 귀곡동 등 남강이 지나는 지역에서는 유례없는 대규모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남강댐을 넓히는 공사를 하면서 이 주변이 물에 잠기게 되자 급히 유적을 발굴했다. 당연히 기초 자료도 없었다. 그런데 파는 곳마다 엄청난 유적이 나왔다. 특히 옥방과 어은이란 지역에서는 '도시'하나가 발굴됐다고 할 정도였다. 이곳에서는 400동이 넘는 집터 그리고 방어 시설과 작업장, 가마와 무덤 등이 나왔다. 특히 청동기 시대 밭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학자들은 15~20개 발굴단을 보내 동시에 1999년까지 3년 동안 작업을 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지역을 발굴하지 못하고 댐을 만들었고 유적지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이 교수는 경부운하는 이보다 훨씬 잔인할 것이라고 했다. 겨우 남강댐 하나 만드는데도 그런 난리를 피웠는데 경부운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공사다. 그리고 중요한 유적지를 발굴한다 해도 결국 운하를 만들려면 그것을 옮기거나 없애야 한다. 지난해 8월 30일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청동기 고인돌군인 마산 진동리 유적지가 국가사적 제472호로 지정됐다. 이 유적은 택지개발을 하려고 지표조사를 하다가 발견됐는데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두고 오랜 시간 갈등을 빚었었다. 진동리 고인돌군은 우리나라 초기 국가 출현시점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유적이다. 그래서 문화재청은 이 지역 일부인 757㎡를 사적으로 지정해 보존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이처럼 어떤 유적은 그 자리에 꼭 있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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