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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 조상 모신 호국공원의 역사왜곡... -경남도민일보

등록일: 2007-02-09


전두환씨 조상 모신 호국공원의 역사왜곡... -경남도민일보 있지도 않았던 전투에서 "눈부신 승리 거둔 의병장" 창녕군 영산면 남산호국공원에 있는 영산현감 전제 장군 충절사적비. 비문에는 전두환씨 14대 조상 전제의 생애와 업적을 적어 놓았다. 그러면서 "전국 3대 국란 호국의 성지"라고 소개하고 있다. 남산호국공원을 찾은 여행객들은 충절사적비와 청동 부조, 충혼탑을 둘러보며 "임진왜란 때 화왕산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의병장 전제"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내용들이 확인을 거치지 않은 왜곡된 역사라는 것이다. <6·8일자 5면 보도> '영산현감 전제 장군 충절사적비' 옆면과 뒷면에는 전제의 생애와 업적이 적혀 있다. 한문으로 새겨진 부분이 있고 바로 옆에 한문과 한글을 섞어 그것을 요약해 놓았다. 요약한 부분을 보면 먼저 "전제 장군이 1558년 합천군 초계에서 났고 천성이 효우(孝友)에 지극하고 학문과 무예가 모두 뛰어나 남국(南國)에 이름이 높았다"고 칭찬하고 있다. 비문은 또 "1585년 무과에 올라 1591년 첨정(僉正·벼슬이름)을 거쳐 영산현감에 부임했고 청백한 목민관으로 칭송이 자자했다"고 했다. 이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자 의병을 모아 배대유(裵大維), 이도자(李道孜)와 함께 군사를 지휘해 영산의 백진과 의령의 정암싸움에 대첩(大捷·크게 이김)했다"고 돼 있다. 또 "화왕산성에서도 큰 공을 세워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에게 흠탄(嘆欽·감탄함)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비문은 "이제 공의 시대는 멀었으나 그 충절은 후손들에게 산 거울이 될 것"이라며 "(이를) 범국민 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므로 이 비석에 공의 사적(事蹟)을 새겨 천추에 전하려 한다"고 마무리하고 있다. 이 비문은 1982년 5월 '문학박사 진성 이가원'이 짓고 글씨는 '성산 이헌주'가 썼다. 비문으로만 보면 전제 장군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눈부신 활약을 펼친 의병장'이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업적'을 증명할 공식 역사 기록은 없다. 특히 전제가 1591년 영산현감으로 부임했다는 내용이나 당시 백진과 정암전투에 참여했다는 내용도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더구나 비문은 전제가 화왕산성에서 큰 공을 세웠다고 했지만 당시 화왕산성에서는 전투가 없었다고 여러 기록은 전하고 있다. 결국 비문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무리하게 '역사'로 만들어 놓았다. 역사자료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전제가 합천 초계에서 의병활동을 했다 △전제가 적어도 1957년에는 영산현감이었다 △곽재우 장군 밑에서도 싸운 적이 있다는 정도다. 조선 정사인 <선조실록>을 보면 선조31년(1598년) 1월 6일 자에 "(지난해 12월) 26일, 도원수 권율이 직접 진영에 나아가 독전하면서 영산현감 전제와 출신(出身) 1인, 군정(軍丁) 1명을 베어 조리돌리니 군병이 진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내용이 있다. 비문은 이와 관련해 모함을 받았다고 했다. 이 역시 확인이 안 된다. 그리고 정유재란 때 화왕산성에 들어가 함께 고생한 사람들의 명단을 적은 <화왕입성동고록>에도 전제라는 이름이 있다. 이 기록에 전제는 '정유재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 방어사를 따라 창녕 화왕산성에 들어간 장령 가운데 다섯 번째 서열인 조전장(助戰將)'이라고만 나와 있다. 한자로 된 비문에도 확실하지 않은 기록이 많다. 한자 비문은 "곽재우 장군이 전제의 영명함과 용맹함을 칭찬하고 군사 기밀을 의논했다"며 전제가 곽재우 장군의 신임을 매우 받은 것처럼 나와 있다. 하지만, 곽재우 장군과 그 아래 장수 17명을 모신 의령 충익사에는 전제라는 이름의 위패는 없다. 또 '정유재란 때 창녕 박진과 의령 정암에서 적군을 수없이 죽였다'고 했지만 박진·정암 전투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있었다. 창녕군은 지난 2001년 전제 기념물과 관련해 논란이 벌어지자 '행장과 신원상소문, 전씨 문중 서원에 있는 봉안문'을 근거로 비를 세웠다고 밝혔었다. 거기에 "81년 당시 국사편찬위원회의 확인 과정을 거쳤고 학자들 감수까지 받아 잘못된 내용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제 기념물이 있는 곳은 지난 1973년 도시공원으로 지정됐다. 그러다 1982년 '전제 장군 기념물'이 들어서면서 '호국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합천 초계에서 의병활동을 했다던 전제가 '창녕의 영웅'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기념물 조성은 지난 1980년 당시 황태조 창녕군수가 "영산현감 가운데 전제가 있는데 전 대통령의 조상인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서 시작됐다. 전두환씨가 쿠데타를 일으킨 후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된 해였다. 황 군수는 이후 전제와 관련된 기록을 열심히 찾았다. 다음해인 1981년에는 내무부와 문화재관리국에서 현지 조사도 벌였다. 전제에 관한 기념물에 적힌 기록이 '역사 왜곡'이며 당시 관선 단체장이 전두환씨에게 보내는 '용비어천가'라는 비난을 듣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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