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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짜 유기 무형문화재 ‘이용구’ 옹 -도민일보

등록일: 2006-09-26


방짜 유기 무형문화재 ‘이용구’ 옹 -도민일보 “유기는 인체 유익한 미네랄 공장” 전통유기의 맥을 잇는다. 인도이지정(因陶以智政)이라 했다. 그릇을 보면 그 나라의 형편을 알 수 있다는 옛말이다. 한 시대의 문화의 높낮이를 가늠 하는 데는 그릇이 좋은 지표가 되는 셈이다. 문화사의 중심 학문인 미술사와 고고학의 주된 연구대상이 당대의 그릇 양식이고 보면 이 말이 실감 난다. 당대의 기술과 예술의 총화로 빚어 온 것이 그릇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그릇다운 그릇을 쓰는 시대는 문화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일상은 문화적인가. 지금 우리에게 과연 문화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그릇이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하노라면 스스로 답변이 궁색해진다. 경제적 여유 계층은 상당수가 세간마저 외국산을 쓰고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이른바 싸구려 ‘리어카 백자’가 고작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우리에게 근대 이후의 그릇 문화는 존재가 막연해진다. 최근 모 텔레비전 방송에서 환경호르몬의 유해성과 그 출처가 플라스틱에 있다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내 보낸 바 있다. 이 방송을 본 사람들, 특히 가정주부들은 방송내용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식기에서부터 젖병에 이르기까지 우리 식탁은 이미 플라스틱에 점령당한지 오래다. 이 같은 상황의 대안으로서 놋쇠를 소재로 하는 유기가 유해성분이 없는 웰빙 식기로서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유기는 식중독균 등 유해세균을 사멸시키고,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 성분을 생성해 주며, 각종 영양소를 장기간 유지 시켜주는 효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 그릇문화 ‘예술의 경지로’ 아들 이경보씨 이수자로 지정 거창군 거창읍 정장리 농공단지 안에 있는 이곳에서는 천지가 숨을 멈춘 자정 무렵이 되면 여러 장정들이 내리치는 망치 소리에 벌겋게 달궈진 쇠가 울음을 토한다. 장꾼 최고 영예인 대장(大匠)칭호를 얻은 이용구 옹이 운영하는 방짜 유기, 사물악기를 만드는 오부자 공방의 모습이다. 지난 93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된 이용구(李龍九·71)옹, 그는 사그라져 가는 전통 그릇문화를 예술의 경지로 격상시키는데 일생을 투자한 인물이다. 방짜는 두드려서 만드는 단조제품이어서 제작공정이 힘들고 까다로워 고가로 판매되고 있다. 전통방짜는 섭씨 1600도의 용광로에 구리와 주석을 녹여 합금한 다음 둥근 금속 덩어리가 만들어지면 형태를 갖추지 않은 이 금속 덩어리를 500~600도의 불길 속에서 담금질을 거듭하면서 두들겨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 낸다. “우리가 좋은 그릇을 써본 지가 너무 오래 되었다. 값이 질을 담보하지는 않으니 반드시 비쌀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이 옹은 “문제는 값보다 안목이다. 일정한 수준의 문화 인식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좋은 그릇을 분별하려면 써봐야 한다“고 소신을 밝힌다. 이어 “좋은 그릇을 만드는 공예가와 그 가치를 아는 눈 밝은 수요층이 우리 시대의 생활문화를 ‘영혼이 담긴 아름다운 그릇이게 하는 힘’이다”며 그릇문화에 대한 나름의 의견도 내 놓는다. 웰빙식기에서 사물악기까지 ‘오부자 공방’ 에 없는 게 없다 또 5, 6년 정도 사용한 후에 제 빛깔을 발하는 전통방짜는 은은한 빛깔과 정아한 소리가 돋보일 뿐만 아니라 중금속 등 유해성분이 전혀 녹아나지 않아 웰빙 건강식기로 그만이라며 유기자랑에 끝이 없다. 사물놀이패는 알아도 사물놀이에 쓰이는 징, 꽹과리, 장고, 북 등의 악기가 ‘오부자 공방’에서 제작된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현대생활에 유용한 방짜유기 제품을 고안하고 보급하는데 진력해 오는 가운데 국악기에도 눈을 돌려 사물악기가 우리 생활 속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맥을 이어 가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특히 지난 7월에는 아들 이경동(41)씨가 무형문화재 이수자로 지정되어 그의 천직을 막내아들을 통해 가업으로 잇게 되었으며, 사십 여년의 경험을 제대로 전수하는데 온 정성을 쏟고 있다. 1993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된 이후 식기, 제기, 불기, 다기 등 그릇 제작에 몰두해 왔으며 이제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징, 꽹과리, 장구, 북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으며 예전에 비해 비교적 넓고 좋아진 공방의 환경에서 우리의 그릇문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리는데 열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유수의 TV 홈쇼핑에까지 진출해 사업영역과 판로를 확대해 가고 있어 경제적 규모화에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방짜유기를 만들다가 한쪽 눈에 파편이 튀어 거의 실명될 뻔한 위기도 몇 차례나 겪었다는 그는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불가마 앞에서 담금질에 여념이 없다. 아들 이경도(41)씨가 지난 해 이수자로 지정받아 대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 그를 영원한 현역으로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방짜유기는 고려시대 궁중의 진상품이며 중국에까지 수출하고, 외국 사신의 선물로 까지 쓰였던 명품”이었다고 말하는 이 옹은 현재 한국폴리텍 Ⅶ 거창대학 BI(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디자인 등 현대적 계승발전을 위한 연구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방짜 유기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빛을 발할 때까지 그의 땀방울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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