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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층인터뷰 > 이종일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 -연합뉴스
등록일: 2006-01-04
< 심층인터뷰 > 이종일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 -연합뉴스 교직 접고 연극에 심취.."아시아의 `아비뇽 페스티벌'이 목표" 산골마을 피서지에 `야외연극축제' 정착..주민들 처음엔 냉소 참가극단.규모 날로 커져..이론.실기교육 거창연극대 곧 개교 (거창=연합뉴스) 강일중 기자 =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에 아비뇽(Avignon)이라는 유서 깊은 도시가 있다. 세계적인 명성의 연극제 '아비뇽페스티벌(Festival d'Avignon)'이 열리는 곳이다. 해마다 7월이면 세계 각지로부터 수많은 연극팬들이 인구 8만의 이 소도시에 몰려든다. 경남 거창에서는 매년 8월 거창국제연극제(KIFT)가 열린다. 올해로 벌써 18년째인 이 연극제를 준비 중인 주최 측은 아비뇽을 꿈꾼다. 거창국제연극제를 '아시아의 아비뇽페스티벌'로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이 중심에는 이종일(李鍾日.52)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이 있다. 거창은 양민학살사건으로 유명한 인구 7만의 소도시로 덕유산, 지리산, 가야산자락에 둘러싸인 지역. 이 위원장은 이곳 대성중학교의 영어교사였다. 그가 연극제를 벌이게 된 것도 처음에는 산골마을 학생들에게 연극이라는 예술을 체험토록 하기위한 목적이 컸다. "교사가 되고 나서 이 지역 학교 선생 몇 분과 대학생을 합쳐 모두 19명으로 '입체'라는 이름의 극단을 만들었어요. 1983년의 일이지요. 시골에서 연극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그런 시절이었죠. 그러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연극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의 연극활동은 1989년 경남지역 5개 극단을 모아 거창에서 현 연극제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시월연극제를 출범시키는 것으로 발전한다. 연극제는 후에 이름이 바뀌면서 1998년의 10회 때는 새로운 모습을 띠며 도약한다. 실내에서 해오던 연극제가 거창의 유적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무대로한 야외연극축제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 위원장이 아비뇽을 배낭여행하고 돌아온 후에 벌어진 일이다. 아비뇽에서는 축제기간에 중세시대 옛 교황청 궁전마당이 야외무대로 변하면서 온갖 공연이 이뤄진다.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 광장, 창고 또는 인근 채석장 역시 훌륭한 공연장 역할을 한다. 이에 비해 거창에서는 천혜의 계곡피서지 수승대(搜勝臺)가 연극제의 중심무대 역할을 한다. 수승대는 원래 삼국시대 때 백제에서 신라로 보내는 사신을 송별하던 곳. 맑은 물이 흐르고 빼어난 경치에 정자와 옛 서원이 있는 그런 수승대가 축제 때는 연극을 비롯한 다양한 공연의 무대로 변한다. 계곡서 헤엄을 치면서 다양한 공연을 구경할 수 있는 수상무대도 있다. "수승대를 야외연극제의 중심무대로 하기 전에 아예 여기에 와서 텐트를 치고 살았습니다. 이곳저곳을 줄자로 재기도 하면서 무대를 어디에 설치할 것인가를 꼼꼼하게 검토했지요. 결국 자연과 인간과 연극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장소로 수승대만한 곳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자연무대를 만드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연극활동을 '딴따라들이나 하는 짓'으로 치부했던 동네 어른들의 엄청난 반대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수승대 안 구연서원에 야외무대를 설치하려 하다 "엄숙해야 할 옛 서원에서 상스럽게 무슨 연극이냐"는 비난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의 인내심 있는 설득작업과 노력 끝에 분위기는 이제 많이 변했다. 동네 어른들도 연극제가 자라나는 학생들의 정서를 기르고 많은 사람들을 거창으로 끌어들이고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안다고 한다. "교사로 있을 때 제가 모셨던 교장선생님들을 지난해 연극제에 초청했었습니다. 그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처음에 제가 하던 일을 '딴따라짓'으로 생각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연극제가 발전한 모습에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더군요." 이제는 거창군의 많은 학교들이 연극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받기 위해 경쟁을 하고 있는 정도다. 보통 다른 군에는 연극교육 시범학교가 하나 뿐인데 거창군은 중학교 한 곳과 초등학교 두 곳 등 3개 학교가 지정돼 있을 정도다. 거창이 '연극도시'가 된 셈이다. "연극제가 시작된 후 얼마동안 연극 관람자들은 학생이 70%이고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30% 정도 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거창 밖의 연극팬들이 연극제의 존재를 알고 피서를 겸해 많이 찾아오다 보니까 그 비중이 완전히 반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난해 연극제 때는 15만명 이상이 수승대를 찾아 연극, 무용, 퍼포먼스, 마임, 민속음악 등 각종 공연을 관람했다. 시골마을에서 연극제를 하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그를 통해 그처럼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연극활동을 처음 했을 때만 해도 서울에 가서 공연도 하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서울이 예술활동의 중심지니까 거기서 인정을 받아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서울뿐 아니라 해외에서 유명한 연극공연도 많이 유치하고 연극팬들을 여기로 불러들이니까 부러움 같은 것이 별로 없어요. 여기 사람들도 이제는 연극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구요." 서울 등 대도시에서 관객몰이를 했던 작품들이 거창에 오는 것은 이제 특별한 일은 아니다. 지난해의 경우 연희단거리패의 '로미오를 사랑한 줄리엣의 하녀', 극단 성좌의 '아까시아 흰꽃은 바람에 휘날리고', 극단 목화의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등의 작품들이 거창 무대에 올려지면서 관객의 환호를 받았다. 일부 극단은 서울에서 공연을 갖기 전에 거창을 하나의 실험무대로 삼기도 한다. "여기서 한 번 올려보는 거죠. 반응이 좋으면 서울로 가지고 갑니다." 극단 성좌의 '달의 뒤쪽' 같은 작품도 여기서 공연한 이후 서울에서 더욱 많은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 이 위원장의 이야기다. 해외에서의 흐름을 반영하는 외국작품들도 거창연극제에서 많이 소개되는 편이다. 지난해의 경우 탈 언어, 탈 장르의 새로운 연극양식들이 많이 선을 보였다. 일본 동경건전지의 '한 여름 밤의 꿈'이나 프랑스 보이스오프의 '작은 서커스, 작은 황소들', 독일 스타피큐렌의 거리극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이 위원장은 극단 입체를 이끌고 해외 공연활동도 활발히 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자신이 연출한 허규 선생의 작품 '다시라기'를 갖고 프랑스 파리에 갔다. "재작년에 허규 선생의 '물도리동'이라는 작품을 거기서 공연했었는데 파리극장 측에서 이번에는 '다시라기'를 초청해 배우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초상집에서의 해학이나 사람이 죽은 곳에서 새 아기가 태어나는 내용 등에 대해 파리 관객들이 큰 관심을 가졌다며 그는 현지의 긍정적인 반응을 전한다. 이 위원장은 거창이 '연극 도시'라는 별칭을 듣는 만큼 이곳에서 연극의 발전을 위해 보다 많은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 중 하나는 '세계 초연작품 공모'다. 거창국제연극제를 통해 공연할 연극의 희곡작품을 공모하는 거다. 여기 수상작품은 극단을 교섭해서 연극제 기간에 무대에 올린다. 경연작가전도 마찬가지다. 젊은 연극인들의 자유분방한 실험을 지원하고 야외무대를 통해 '자연' 그 자체를 하나의 중요한 연극적 요소로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 시행 첫 해인 2002년에 6개에 불과했던 참가 극단 수는 2003년에는 11개, 2004년에는 16개, 지난해에는 71개로 늘어났다. 여기서 대상, 금상, 은상 등을 수상한 단체는 다음해 국내 공식초청작 공연에 참가하게 되며 세계초연작을 기획공연할 때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재작년에는 수승대 근처의 한 폐교를 인수, 거창연극대학을 설립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소수정예 연극인을 키우려고 5년전 부터 기획해 왔던 일입니다. 이론과 실기교육을 통해 연극인을 키우는 산실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거창국제연극제를 맡아서 할 인재도 키워야죠. 2007년에 첫 학생을 모집하게 되는데 4년제로 한 학년에 50명 정도씩 뽑을 계획입니다. 요즘은 배우들도 인문학이 약해 셰익스피어 작품의 해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첫 2년은 종교, 심리학 등 교양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 2년은 연극 기술 교육 쪽에 치중할 생각입니다." 연극에 대한 집념 때문에 그는 1996년에 16년 동안 해왔던 영어교사직도 그만뒀다. "사직한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많이 말리더군요. 그러나 당시 교직과 연극 두 가지를 함께 하기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제가 선생을 그만 두더라도 영어교사를 대신할 수 있는 분은 많았지만 연극을 포기하면 연극제를 대신 끌고 갈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일본 유학 중에도 거창국제연극제에 강한 집념을 보였다. 일본대 대학원에서 무대예술과 과정을 공부하던 4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일시귀국해 연극제를 준비하고 마무리 지었다. 다른 많은 것을 희생하고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온 거창국제연극제를 그가 원하는대로 '아시아의 아비뇽축제'로 만들기 위해 해야할 일은 산적해 있다. "우선은 여기에서 공연되는 작품들의 질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해외에서도 좋은 작품을 많이 들여와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자연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극장도 덕유산 쪽으로 더 생기게 될 것입니다. 숙박시설이나 주차장도 많이 확보해야 합니다. 예산지원 문제가 가장 현실적인 걱정거리죠." 그는 수승대가 있는 거창 서부지역 외에 연극제 시행지역을 확대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동부의 온천지역에 극장을 하나 만드는 것도 구상 중이다. 거창의 동서남북부 각 지역 마다 비극 또는 희극 공연을 특화시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비뇽이 페스티벌 기간에 115개 극장에서 세계 550여개 극단이 참가해 공연을 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거창국제연극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거창국제연극제에는 지난해 경우 일본, 프랑스, 독일, 페루, 러시아, 브라질, 우크라이나를 포함 9개국에서 45개 작품이 참여 199회의 공연을 가졌다. 주민들의 연극제에 대한 참여의식도 아직은 차이가 있다. "아비뇽은 연극제 준비가 무르익어 갈 즈음에 주민들이 자기 집을 대여하고 친척 집으로 가버립니다. 연극제를 통한 관광수입을 기대하는 거지요. 거창도 그런 면에서 연극제를 지역발전과 연계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위원장이 극단 입체의 설립을 통해 거창에서 연극활동을 본격적으로 한 지도 벌써 23년이 됐다. 이룬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많다. 그간 돈도 많이 까먹었다. 대성중학교 교사 시절 그가 가르쳤던 학생들 중에는 그의 길을 따른 제자들도 있다. "그 때 학생 중에 극단 입체 단원이 된 사람도 몇 있습니다. 교사를 하면서 연극을 지도하는 친구도 있지요." 연극인의 길을 택한 제자들을 바라보는 그의 기분은 어떨까. "어려운 길을 택한거죠. 저 때문에 그런 어려운 길을 가게 된 것이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만..." 그러나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게 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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